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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장아 괜찮니??

    최근 한 몇주간 잠을 평소보다 많이자고 매일 자전거를 타고 커피를 줄여서인가 안정시 심박수가 50까지 내려갔다. 운동 강도가 낮은날은 45까지.

    그렇다보니 잘때는 더 많이 아래로 내려가는데 며칠전에는 처음으로 수면중 심박수가 10분 이상 40 아래로 내려갔다며 알람이 왔다. 달리기를 하는 코워커한테 말했더니 자기도 그런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어제는 늦잠을자고 일어났더니 손목에서 지잉지잉 진동이 계속 오길래 누가 이렇게 아침부터 연락을 하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같은 알람이 자는사이 9개나 와 있었다. 뭐지 진짜 하며 오늘은 짜게먹고 카페인 많이 먹고 덜 자야지 했다.

    그래서 점심엔 딤섬도 사먹고 저녁에는 닭요리를 해서 (소금 팍팍!) 평소와 같이 세라노페퍼 를 슬라이스해서 같이 먹었는데 다 먹었을때 쯤에 갑자기 배가 아프더니 식은땀이 나면서 눈 앞이 흐려졌다. 사실 매운거 먹고 기절 직전까지 가본적이 한번 있었는데 (작년. 이 이후에 태국고추 하나 이상 안먹음) 이미 한번 경험해봐서인가 무섭진 않고 아 뭐야… 진짜?? 하면서 어이가 없었다. 태국고추도 아닌데 세라노에 기절한다고? 하면서 겨우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쇼파로 걸어가려는데 몸에 힘이 안들어가서 몇 걸음 못가 벽에기대 주르륵 쓰러져 바닥에 앉았다. 저번보다 오래가는것 같아 아… 세라노 페퍼 먹다 바닥에서 죽는건 너무한데 하면서 겨우 일어나 쇼파에가서 누웠다. 몇분 있다 다시 화장실에 다시가서 게워내고 나서야 식은땀이 멈추고 정신이 맑아졌다.

    찾아보니 Vasovagal Syncope (미주신경성실신)이라고 혈압과 심박수가 일시적으로 떨어져서 뇌에 피가 공급이 안되서 기절까지가는것…이 매운음식으로도 유발될수 있다고한다.

    하여튼 이 긴 글의 요지는 혹시 내가 죽은체 발견된다면… 식탁에 세라노 고추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시길…

  • 습관

    나는 근래 2-3년에서야 인생의 안정기를 찾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 안정기에 들어서서야 새로 생긴 좋은 습관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 일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아니였던 새로 생긴 좋은 습관들:

    1. 이불 정리. 자고 일어난 자리를 정리하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수 없다.
    2. 주방정리. 주방정리가 끝나지 않으면 하루를 마무리 지을수 없다. 싱크대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야 잘수 있다.
    3. 걸어다니기. 신발 밑창의 밑창이 지우개처럼 갈린다.
    4. 스피닝. 정말 하기 싫은날은 안하고 넘어가지만 며칠 내에 빚 청산하듯 매꿔가며 월 23-30시간 탄다. 사실 시간을 채우는것보다 더 목매는건 월평균 active energy 1000 kcal/day 넘기기. 내려가면 계산기 두드려 가며 꾸역꾸역 올린다.
    5. 치실 매일하기. 이건 진짜 신의 영역이다 생각했지만 이젠 나도 끊을수 없다…

    그리고 고쳐지지 않은, 아니면 새로 생긴 나쁜 습관들:

    1. 잠 제대로 안자기. 주말 포함 평균 6시간 반에서 6시간 45분정도를 자는데 주중엔 5시간-5시간 반을 자고 주말에 몰아잔다. 근데 요 몇주동안은 평균이 6시간 10분정도로 떨어졌는데 그래서 그런가 확실히 피곤하다. 이렇게 인지를 하면서도 나는 2시 5분인 지금 이 글을 쓴다. 알람이 7시니까 5시간정도 잘수 있겠네 하면서.
    2. 7-up zero 섭취. 얼마전에 인스타에서 diet coke를 fridge cigarette라고 표현한 밈을 봤는데 정답이다… 오늘도 한 케이스를 사서 집에 걸어오며 ‘아니 나는 술도, 담배도, 약도 안하고 심지어 이제 운동도 매일하는데 이정도는 봐줘야지 ㅡㅡ’ 하며 언제 있을수도 있는 intervention의 defence를 준비했다. 하지만 지금 약간 하루 한갑피는 골초 느낌이라 줄일 필요가 있다… (오늘 오후 7시에서 10시 사이에 4캔… ㅎㅎ)

    여기까지쓰고 일단 너무 졸려서 치실하고 양치하고 5시간 자야겠다.

  • 파인애플

    어제 퇴근길에 파인애플을 두개나 샀다. 두개사면 하나에 $4.99. 아주 크고 잘 익은 파인애플 두개.

    “델몬트 허니 글로우”라고 적힌 아주 ~fancy~ 한 택 뒤엔 파인애플 자르는 법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대로 따라해보니 정말 쉬웠다. 파인애플은 좋아하지만 자르는게 어렵고 귀찮아 잘 안 먹었었는데…

    아무래도 두개는 다 못먹을것 같아 하나는 이웃을 줄까, 친구를 줄까 했는데, 어이 없게도 어제 저녁, 야식, 오늘 아침, 간식, 그리고 퇴근해서까지 쉬지 않고 먹었더니 하루만에 하나를 다 먹었다.

    끝까지 아주 달고 쥬씨하고 상큼했다. 한조각 한조각 사라지는게 아쉬울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사실 오늘은 조금 울적했는데 파인애플을 먹고 좋은 음악을 들으니 조금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파인애플이 끌어올려준 이 기분. 모멘텀을 잃지않게 여기에 쏟아내고 자전거를 타야지.

    살다보면 내 마음대로 안되는 일 투성이다. 가지고 싶어도 가질수 없는것도 수만가지. 간절히 원해도 안되는 것들. 그 바람의 카테고리가, 깊이가 뭐가 되었든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지칠수 밖에 없다.

    나는 다행히도 그런 경험을 아주 많이 해보진 않았는데, 그건 내가 바라는게 없어서가 아니라 나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객관화가 잘 되어있으며 타협과 포기가 빠른 성격이기 때문이다. 근데 이번엔 조금 어렵다. 그래서 슬퍼졌다.

    회사 모니터 아래엔 내가 1월쯤 적은 “할수있는 일을 하자!” 라고 적힌 포스트잇이 있는데 왜 자꾸 망각하고 내가 내 의지와 노력으로 할수 없는일을 바라고 실망하지 했다.

    퇴근해서는 우울감을 떨치지 못한채로 늘어져 있다 일어나 빨래를 하고나니 그제서야 배가 고파 파인애플을 먹기 시작했는데, 진짜 어이없게도 한입 한입 먹을때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일시적일수 있겠으나) 파인애플로 떨쳐버릴수 있는 우울감 이라니 – 이건 축복이다.

    왠지 이번엔 깔끔히 정리할수 있을것 같아 좋다. 혹시 내일 다시 우울해져도 파인애플이 하나 더 있으니 괜찮을것 같다.

    혹시 며칠뒤에 또 우울해져도 파인애플은 또 사면 되니까.

  • 답답한 날들!

    일주일이 무서울정도로 빨리 간다. 딱히 하는 일도 없는데.

    내게는 조용하고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들인데 세상은 정말 이상하게 돌아간다. 일상이 조용한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원래는 뉴스 팟캐스트들 (The Daily, Frontburner, The Journal, Decibel 등)을 매일 들었었는데, 반복되는 힘 빠지는 세상 이야기들을 매일 여러 테이크로 듣다보니 한도 끝도없이 답답하고 기운빠져 언젠가부터 아예 안듣기 시작했다.

    근데 지난 며칠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거지 싶어 어제 오늘 일주일간의 뉴스를 몰아 들었는데 정말 역시 무겁다. 식탁에 앉아 타이핑중인데 마치 나는 누워있고 그 위로 무거운 쌀 가마니가 몇개 쌓여있는것 마냥 가슴이 답답하다. 숨을 몇번이나 크게 들이쉬고 내뱉어도 갑갑하다.

    나처럼 무지하고 동떨어진 사람도 이렇게나 무기력해지는데 그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이 turbulence는 언제 잠잠해 질까.

  • 나도! 관대한 사람이 되고싶다.

    약간은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다.

    며칠전에는 오랜만에 자의로(?) 울었다 (영화나 무언가를 보고 듣고 운것이 아닌, 100% 나의 감정으로 나오는 눈물)

    길게 운건 아니고 정말 또르륵 한번하고 멈췄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멈출수밖에 없었다. 슬퍼서 운게 아니라 바로 멈출수 있었다.

    주저리 다 쓸순 없지만 눈물의 이유는 그날 오전에 있었던 갑갑한 미팅 때문인데, 클라이언트보다 일을 못(안)하는 컨설턴트에게 몇달간 쌓이고 쌓인 갑갑함이 미팅 중간에 터져버려 내가 급발진 해버렸기 때문이다. 나보다 훨씬 연배와 경력이 많은분께 도데체 똑같은 회의를 얼마나 해야하는거냐고 모인 사람들의 시간을 그만좀 낭비하자고 무섭게 쏘아붙였다. (한국이 아니라 가능한 이야기.) 화를 낸 후 정말 숨어버리고 싶었지만 1시간을 더 이어갔다.

    그 날 오후내내 누군가에게 화를 냈다는 것에 피로감과, 또다시 감정에 휩쓸려버리고 만 내게 실망해 기분이 좋지 않았고, 집에와서도 시체처럼 누워있다가 두시간쯤 후 세수를하러 화장실에 가다 울었다.

    그 다음날 그 미팅에 함께했던 사수에게 어제 화낸거 때문에 집에가서 울었다 말을 해주니 그는 어이가 없어하며 너는 rational 했으며 professional 했다 말해주며 화낼만 한 상황이었다하면서 너무 착하면 안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착해서 운거 아니라고. 미안해서 운것도 아니고 피로함과 화를 컨트롤 못한것이 짜증나서 나서 운거라고 말해줬다. ㅎㅎ…

    나의 사수는 진짜 멋있는데 그는 타인의 실수와 무지에 관대하다. 감정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에 그가 어쩌다 화를 낼때면 정말 타당한 이유가 있어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올초에 그에게 나의 올해 목표는 너의 반만 따라가면 좋겠어 라고 했었는데 벌써 6월인데도 나는 달라진게 없다.

    화를내서 후련해지기라도 하면 억울하지나 않지. 어떻게 하는걸까 관대해지고 화 안내게 되는거.

  • 일요일 그리고 엄마

    바쁜 주말도 좋지만 안 바쁜, 평소와 같은 별일 없는 주말도 좋다.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엔 엄마를 만나는데 특별하게 어디에 함께 갈때도 있지만 오늘처럼 별일 안하는 날이 보통이다. 그래도 평소엔 엄마가 좋아하는 요리를해 늦은 점심이나 이른 저녁을 먹기도 하는데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안했다.

    점심지나 느지막이 파머스마켓에서 만나 로컬딸기를 한 바가지 사고, 엄마와 나 일주일 먹을 채소와 빵도 샀다. 그러곤 동네 빵집에서 페이스트리와 커피를 마시고 집으로 와 티비를 틀어놓고 11월에 갈 여행 이야기를 했다. 이런날엔 엄마는 항상 세시간을 넘기지 않고 나 이제 갈게 너 쉬어~ 하는데 그럼 전철역까지 같이 걸어간다. 오늘은 걸어가면서 ‘별일없이 산다’를 흥얼거리며 걸었다.

    엄마의 지인들은 남들에게 엄마를 소개할때 여긴 아들 딸이 둘다 잘됐잖아~ 하며 소개한다는데 (엄마는 우리 이야기를 남에게 잘 안하기에 도데체 뭘 보고 잘됐다 하는지도, 딱히 잘 된 것의 기준도 뭔진 모르겠으나) 엄마는 그런것보다 너랑 노는게 좋아~ 한다. 그래 엄마 다른건 몰라도 딸이랑 매주 만나서 노는거랑 맛있는거 먹는건 맨날 자랑해! 했다.

    엄마는 집에 도착하면 항상 오늘 재밌었어, 좋은 구경 시켜줘서 고마워, 맛있는거 해줘서 고마워 하는 톡을 보내는데 같이 놀고 먹는데 뭐가 고맙나 싶다.

    여기까지 쓰고나니 착한 딸 같지만 사실 난 엄청 툴툴대는, 금명이보다 더한 딸인데, 예전과 다르게 내 말에 엄마가 기가 죽을때면 아차 한다. 가끔 엄마가 나 너무 바보같지, 귀찮게해서 미안해~ 할때면 심장이 쿵 한다. 엄마 나는 회사에서 더 많이 정말로 바보같은 질문들 한시간에 하나꼴로 받고 더 귀찮은일 매일매일 하루에 여덟시간씩 해 하면 그제서야 웃는다.

    지난주에 만난 친구들과 나이들어가는 부모님에 대하여 이야기 했는데 특히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들은 일년에 두번정도 보면 2*30년, 겨우 60번 보면 안녕 하는거라 했다. 60번.

    좋아하지도 않는 코워커도 하루종일 매일매일 보는데.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60번 본다니. 참 슬픈 일이다. 나도 그럴때가 있었는데 이제 가까이 살아 참 다행이다 싶다가도 지금도 시간으로 따지면 너무 짧음에 놀란다.

    3-5시간*52주*30년 = 4680-7800시간. 짧다. 매주 엄마가 좋아하는 곳에 가고 좋아하는 요리를 해줘도 모자른 시간.

  • 소원

    어제 사수가 점심시간에 장을보고 와 엄청 신난 얼굴로 신기한걸 샀다며, 냉장고에 서프라이즈가 있다 했다. 뭔가 했더니 빨간색 키위. 오후에 같이 먹자 했지만 미팅때문에 바빠 집에갈때야 챙겨줬다.

    (그와는 평소에도 맛있는걸 서로 자주 나눠 먹는데 아주 소소하다. 맛있는 과일이나, 서로의 고향이나 휴가지에서 가져온 과자라던가. 가끔은 직접 만든 디저트나 빵 같은것. 회사에서 둘이 또는 팀원들과 함께 먹기도 하고, 서로의 가족들과 먹으라고 챙겨주기도 한다.)

    그가 오늘 말해주길, 프랑스에선 새로운것을 먹을때소원을 빈다고, 그의 이모 (70대 – 그의 엄마와 사촌들과 함께 여행 오셨다)도 오늘 아침 빨간 키위를 처음 드시곤 소원을 비셨다고 했다. 그의 4인가족, 그리고 친척들이 모두 둘러앉아 빨간키위를 먹으며 소원을 비는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웃음이 나왔다.

    퇴근해서 저녁을 챙겨먹고 빨간 키위를 먹으며 나도 소원을 빌었다. 매번 비는 모두의 건강과 행복이 아닌, 사소한 즐거운 소원을 빌어봤다.

    이루어 지면 다음엔 파파야를 먹어봐야지. 그 다음엔 망고스틴. 이렇게나 기회가 많다.

  • 오렌지

    왜 인지 모르게 힘 없는날.

    뭔가 잘 안풀리는 날이 있다. 평소와 많이 다르지 않은 날인데도 기운 없는날. 몸에도 힘이 없고 마음도 맘대로 안되는날.

    오늘 같은 날.

    분명 주말을 잘 보냈고. 잠을 잘 잤고. 좋은 커피를 마셨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동료와 깔깔 웃기도 하고. 심지어 날씨도 좋았는데 하루종일 힘이 없고 기분이 안좋았다. 퇴근후엔 살까 말까하던 셔츠도 사고 집에 걸어오는데 기분도 그대로였고 힘이 없어서 몇번이나 길에서 멈췄다.

    dehydration일까 배가 고픈걸까해서 집에 오자마자 물을 마시고 치즈를 먹었는데도 그냥 그랬다.

    저녁만들 기운도 없어서 쇼파에 누워있다가 “아! 오렌지!!!” 하고 일어나 (기립성 저혈압으로 세상이 한 30초 멈췄다) 냉장고에서 오렌지를 꺼내 네등분해 첫 입 먹는순간 천국을 맛봤다.

    차가운 과즙이 입에서 폭발했다. 엄청 달고. 적당히 새콤하고.

    한입먹고 “what the fuck! how the fuck is this this good”

    두입먹고 “no fucking way”

    세입먹고 “미쳤네 진짜”

    네입먹고 “와 씨발 하나 더?”

    1분만에 오렌지 두개를 까먹고 나니 하루종일 알수없이 나를 누르던게 사라졌다. 별거 아니었네.

    이 오렌지는 미국산 minneola tangelo – 과일 번호 4383. 전화번호 뒷자리 4383으로 바꾸고 싶을 정도.

    사실 이 오렌지 맛있는건 알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먹어서 잊고 있었다. 걸어서 40분정도 거리의 마트에만 팔기 때문.

    이 오렌지는 어제 사왔는데, 집에 오는길 만난 이웃이 내가 손에 든 오렌지색 피망꾸러미를 보곤 “오렌지인줄 알았어. 오렌지가 먹고싶거든” 하길래 (3초의 고민 후) “너…운 좋다. 나한테 진짜 맛있는 오렌지 있는데” 하고 장바구니에서 하나 꺼내줬었다. 그를 오후에 또 만났는데 그가 “그 오렌지 뭐야??? 진짜 맛있던데” 하는 평을 전하길래 아! 내가 미친건 아니구나 했다.

    내일은 일찍 퇴근하고 오렌지 사러 가야지. 이번엔 열개쯤 살까.

  • 봄을 잊을까봐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었다. 시간이 정말 무섭도록 빨리간다.

    올해 밴쿠버의 봄은 정말 아름다웠다. 매번 피는 꽃들이 분명한데, 비가 많이 오지 않아 꽃들이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오래 피어 있었다.

    내집 창문 앞에는 분홍색 꽃이 피는 나무가 있는데 (벚꽃인지는 모르겠다), 꽃이 피기 까지 계속 기다렸다. 매일 아침 블라인드를 걷을때마다 설렛다. 그러다 어느 날 평소와 같이 퇴근해 문을 열었는데 창 밖에 꽃이 피어있었다. 내가 뭐라고 이런걸 가질수 있나 했다.

    동네를 돌아다닐때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꽃들이 움직이는게 좋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꽃잎들이 비처럼 내리는게 좋았다. 그 뒤로 지는 해를 볼수있는 저녁이 좋았다. 봄이구나 오래 느낄수 있어 좋았다.

    지난주엔 캘거리에 다녀왔다. 밴쿠버의 계절이 바뀔때 쯤 캘거리에 가면 지난 계절을 느낄수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이미 세탁해 넣어두었던 비니를, 겨울 외투를 가져갔다.

    처음 도착한 날 (월요일)엔 꽤 추워서 도착하자 마자 옷을 바꿔 입었다. 다음날 아침엔 패티오 앞에 얇게 내린 눈이 반가웠다. 물론 아침을 먹기 전에 다 녹았지만… 토요일엔 캘거리에도 봄이 왔다. 일요일엔 다시 추워졌지만.

    다시 돌아온 밴쿠버는 여름 같다. 겨우 일주일 없었는데 이미 푸르게 바뀐 거리가 어색하다. 봄이 지나간다.

  • 스몰토크

    요새 회사 앞 커피샵에 자주 가서 그런가, 매번 보는 바리스타는 이제 손인사와 함께 묻지도 않고 주문을 넣는다.

    질량 보존 법칙처럼 대화 양의 법칙인지 주문을 받으려 말을 안 내뱉는 대신에 아주 짧은 스몰토크를 한다. 일 마치는 시간쯤 가면 “일 끝났어?”, “오늘 일은 어땠어?” 같은 질문을 하는데 나는 매일 비슷한 짧은 대답을 하고 계산을 한뒤 옆으로 빠진다. 저번주에는 처음으로 대답 후 “너는 어땠어?” 라고 되물어 봤는데 처음 들어보는 답이 나왔다.

    보통사람들은 일이 끝날즈음에 오늘 일은 어땠냐 물으면 피곤하다던지, 하루가 길었다던지, 바빴다던지, 매일 똑같지 라던지, 집에 갈 시간이라 기쁘다던지, 아니면 (정말 평범하게) 좋았다던지 하는 대답이 나오는데. 이 바리스타가 말하길 – 원래 퇴근시간엔 어두웠는데 (봄이 와) 날이 길고 밝아져서 익숙하지 않다며, 지금도 3시쯤인줄 알았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5시가 넘은게 신기하다며 대답을 했다.

    대충 긍정의 말과 웃음을 지어주고 커피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나는 3시 이후 계속 시계를 보며 퇴근시간을 기다렸는데. 나는 아주 바빠 시간이 빨리 가는 날 조차도 난 시계를 보는데… 그러지 않을수도 있다니. 그는 시간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집에 갈때가 됬네 하며 기뻐하며 일을 마친다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시계가 없네 하고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날이 긴게 익숙하지 않다니, 밴쿠버에 온지 얼마 안됐나보다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했다.

    평소의 스몰토크는 숨쉬듯 생각없이 내뱉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데 오랜만의 신선한 대답이라 재미있었다. 나도 다음엔 매일 같은 대답 (보통 “너무 길었어” 라 답한다)이 아닌 긍정적인 다른 말을 해줘야지.